<전편에서부터 계속…>
(2009년 10월 4일 여행기) 바쓰(Bath)에서 느긋하게 여유를 보내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늦어버렸다. 솔즈베리(Salisbury)로 가기 위해 다시 바쓰 스파 역(Bath Spa Station)으로 가서 급하게 기차에 올랐다. 바쓰와 솔즈베리는 가까운 편이라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솔즈베리 역에서 시내로 가려면 15분 정도 걸어야한다. 언덕길을 내려가고 작은 개울을 건너니 영국 시대극에서 본 듯한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마을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났다.
그런데 솔즈베리의 분위기는 조금 전의 바쓰와 다르게 너무나도 한산했다. 일요일의 솔즈베리는 죽은 마을이었다. 상점들은 다 닫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처음 런던에서 이날 솔즈베리로 가는 열차편이 아예 없었던 것이 이제야 이해되었다. 솔즈베리는 정말 아기자기한 마을이다. 스톤헨지(Stonehenge)로 가기 전 먼저 이 작은 마을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마을의 중심가마저 아기자기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마을 중심가를 조금 벗어나 탁 트인 곳에 들어서면 솔즈베리의 명소인 솔즈베리 대성당(Salisbury Cathedral)이 보인다. 작고 귀여운 마을 분위기와 달리 이 성당은 웅장한 규모로 지어져 있다. 다른 곳에서 봐왔던 영국의 사원들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이 성당은 높고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첨탑까지 더해져 철저히 성당다운 모습을 띄었다. 이곳의 첨탑이 영국에서 가장 높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또 세계사를 배울 때 명예혁명, 권리장전과 함께 나오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 대헌장)‘의 4개 원본 중 하나가 바로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스톤헨지로 가려면 다시 솔즈베리 역으로 가야한다. 역에서 매 30분 또는 1시간마다 출발하는 스톤헨지 투어버스를 이용하면 스톤헨지로 쉽게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일요일 늦은 오후에는 이미 투어버스 매표소가 닫혀있었다. 역무원에게 투어버스를 탈 방법이 없냐고 물으니 이날 버스 스케줄은 이미 끝났단다. 하는 수 없이 역 밖으로 나가니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던 택시들이 이미 줄을 서있었다. 저렴한 버스에 비해 비싸기로 유명한 영국 택시를 이용하긴 꺼려졌지만, 솔즈베리까지 왔는데 스톤헨지도 못 보고 그냥 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아 한 택시기사와 흥정을 했다. 스톤헨지까지 갔다가 사진 찍고 관광하는 거 기다려주고 다시 솔즈베리 역으로 데려다주는데 40파운드에 해주겠단다. 당시 환율로 40파운드면 거의 8만원 정도다. ‘런던에서 뮤지컬도 이것보다 싸게 보는데’하는 생각이 났지만 뭐 어쩌겠나.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택시를 탈 수밖에.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택시를 타보는 것도 하나의 경험이라고 마음속으로 합리화 했다. 어찌되었든 버스보다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던 것도 사실이다.
머나먼 동방에서 온 손님 하나를 잡은 택시기사는 운전을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왔느냐, 스톤헨지 보려고 영국까지 왔느냐, 학생이냐, 공부하러 왔느냐, 여행하러 왔느냐 등등. 솔즈베리와 스톤헨지 사이는 생각보다 꽤 멀었다. 들판 위에 펼쳐진 긴 길로 한참을 달려서야 스톤헨지에 도착했다. 버스가 끊겼다는 말에 ‘그냥 걸어갈까?’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택시를 탄 게 천만 다행이다. 걸어갔다면 그날 안에 도착하지도 못 했을 것이다.
택시가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솔즈베리에서부터 끝없는 들판만 지나왔었는데 기사가 세워준 곳도 그 초원 한복판이었다. 길가에 쳐진 울타리 너머 평원 멀리에 보니 그 유명한 돌무더기가 있었다. 그 곳에서도 스톤헨지의 형체는 확인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자세히 봐야할 것 같아서 입장료를 내고 스톤헨지 공원으로 입장했다. 시간이 이미 늦어 폐장하기 직전이라 직원이 한 시간 이내로 보고 나와야 한다고 당부를 한다. 스톤헨지를 보는 것 자체엔 한 시간이나 걸리지 않는다. 스톤헨지 주변에는 낮게 로프가 쳐져 있었고 그 주위에 동그랗게 길이 나있어 주변을 돌면서 스톤헨지를 둘러볼 수 있었는데 그 한 바퀴 도는 데에는 천천히 걸어도 20분도 안 걸린다. 둘러보면서 설명을 들을 수 있게 오디오가이드도 제공된다. 개인적으로 이 불가사의한 현장에 왔다는 감격에 젖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이 돌덩이들을 천천히 완상했다.
설명에 따르면 스톤헨지는 신석기시대에 완성되었고, 놀라운 사실은 일부 돌기둥은 이곳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웨일즈 지방의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다. 하지가 되면 이 둥글게 세워진 돌기둥들의 그림자가 정확히 원의 중심에 드리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태양과 종교 의식에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원래는 Π형의 고인돌들이 어떤 제단처럼 원형으로 둘러 세워진 모양이나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지금은 일부가 무너진 모습이다. 그래서 주변을 빙 돌면서 여러 각도에서 볼 때마다 모두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날씨는 흐렸고 탁 트인 평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서 한껏 분위기를 더했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기다리고 있던 택시기사가 시동을 건다. 역까지 다시 데려다 준 기사는 남은 여행 잘하라며 작별인사를 한다. 솔즈베리에서 런던까지 직접 연결되는 열차편도 없던 날이었기에 런던의 숙소로 다시 돌아갈 때 까지 3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하루 동안의 여운에 잠겼다. 영국에서 로마시대와 선사시대를 만난 것도 이색적이었고, 빅토리아 시대의 모습이 아직 남아있는 도시와 평원 한가운데 있는 아기자기한 마을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계획보다 늦어지긴 했지만, 바쓰와 솔즈베리 두 곳으로 떠난 당일치기 여행은 이렇게 무사히 끝났다. 런던에서 길게 묵게 된다면 근교 도시로 이처럼 짧은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웨일즈나 스코틀랜드, 아일랜드까지 갈 것 없이 잉글랜드만 하더라도 런던과는 또 다른 모습을 찾을 수 있는 도시가 많이 있다. 언제 또 가보겠나. 길어지는 런던 여행에 대해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다면 지도를 펼쳐들고 단 하루만이라도 과감하게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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