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30일 여행기) 예전 모 항공사 CF에 안개 낀 몽생미셸(Mont St-Michel)이 배경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땐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잘 몰랐지만, 바다 위에 성이 세워진 모습과 안개 낀 날씨의 조화가 몽환적으로 느껴져서 어딘지 참 궁금했었다. 나중에 배낭여행 중 파리에서 묵은 민박집 게시판에 붙은 안내 자료를 보고서야 그곳이 프랑스의 유명한 관광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몽생미셸”이라고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파리만 해도 봐야할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파리에서 3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그곳까지 갈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유럽으로의 두 번째 배낭여행을 떠났던 2009년 가을, 나는 그 가보고 싶었던 몽생미셸을 마침내 밟았다.
방금 언급했다시피 파리에서 몽생미셸까지는 편도 3시간 반, 왕복 7시간이 넘게 걸린다. 또, 파리로 돌아오는 교통편이 오후 5시 25분 이후로는 없기 때문에 파리에서 몽생미셸로 당일치기 여행을 하고 싶다면 아침 일찍 서둘러야한다. 그날 하루는 절반 이상을 기차와 버스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조금 더 여유롭게 보고 싶거나, 몽생미셸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고 싶다면 하루 숙박을 하고 근처 도시 생말로(St-Malo)도 같이 둘러보고 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단 파리에서 렌(Rennes)이나 돌드브르타뉴(Dol de Bretagne)까지 TGV를 타고, 그곳에서 고속버스로 갈아타서 몽생미셸까지 가는 방법이 일반적이고, 이는 프랑스 기차역에서 SNCF(프랑스 철도청)를 통해 한꺼번에 예약할 수 있다. TGV는 유레일패스 등의 레일패스가 있어도 예약을 따로 해야만 탈 수 있고, 패스 소지자용 TGV 쿼터가 적게 배당되므로 패스를 사용한다면 빨리 TGV 좌석을 예약하는 것이 좋다.
아침 일찍 파리 몽파르나스(Montparnasse) 역에 갔다. 렌으로 향하는 TGV 안에서 먹은 간식은 어제 산 마카롱. 워낙 달달하기에 8개들이 세트는 딱 충분했다. 커피랑 같이 먹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유럽에서 배낭여행을 오래 하다보면 2시간 기차 타는 것 정도는 익숙해진다. 이번에도 차창 밖을 보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기다 보니 금세 브르타뉴 지방의 관문, 렌 역에 도착했다. 렌에 도착하면 역에서 표지판을 보면서 Gare Routière(버스 터미널)라고 써진 방향으로 열심히 가야한다. 마침내 역과 연결된 터미널 쪽으로 나오면 몽생미셸 행 버스가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기사에게 예매한 표를 보여주고 타면서 요금표를 보니 몽생미셸로 가는 버스는 학생 요금이 적용되었다. 따라서 국제학생증이 있다면 3.5 유로 할인된 가격으로 탈 수 있었다. 국제학생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르고 기차역에서 버스까지 미리 예매한 바람에 왕복 7유로 손해를 봤다. 만 25세 이하 학생이라면 버스 티켓은 기차역에서 예매하지 말고 꼭 기사에게 직접 구입하여 학생할인을 받길!
버스를 타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브르타뉴의 풍경을 감상하다보니 어느새 버스는 푸른 지붕의 영국식 주택들로 가득한 퐁토르송(Pontorson)을 지나고 있었다. 날씨는 파리에서부터 흐렸는데, 이곳은 안개로 자욱했다. 마을 몇 군데를 돌아서 지나가던 버스는 마침내 곧게 뻗은 길로 들어섰고, 그때 창문 밖 안개 속에서 서서히 몽생미셸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장관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안개가 걷히며 등장하는 몽생미셸의 자태는 오래전부터 상상하던 그 신비한 모습 그대로였다. 순간 버스 안은 각개국어로 탄성을 내뱉는 소리로 가득해졌다. 나도 한국어로 “우와”를 연발했다.
갯벌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달리던 버스는 성벽 아래 주차장에 정차했다. 몽생미셸 바로 아래에서 이를 올려다보니 더 위압적으로 느껴진다. 이 바위섬은 위에 건물이 세워지고 성벽이 둘러싸게 되면서 요새화가 되었다. 바위섬에 이런 거대한 성이 세워지게 된 배경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아브랑슈(Avranches)의 주교, 성 오베르(St. Aubert)의 꿈에 대천사 미카엘이 나타나 이 바위섬 위에 수도원을 지을 것을 명한다. 그는 이를 무시했으나 꿈에 미카엘이 다시 나타나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태우자 놀라서 잠에서 깬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이마에 구멍이 생겼음을 확인한 주교는 수도원 공사에 착수하게 된다. 이에 유래해서인지 이름 역시 성 미카엘의 언덕을 의미하는 몽생미셸(Mont St-Michel)이다. 지금 같은 모습은 이후로 성당이 건립되고 여러 차례 개축을 거치고 성새화가 진행됨에 따라 민가도 들어서게 되면서 형성되었다.
성벽 안으로 들어서면 중세의 거리 모습이 펼쳐진다. 나선형으로 빙빙 돌면서 꼭대기의 성당을 향해 나있는 좁은 거리와, 건물의 생김새, 나무로 만들어진 간판들이 중세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다만 영화에서 보던 대로 푸줏간이나 대장간 같은 상점들 대신 유명 관광지답게 기념품 상점과 비싼 레스토랑들로 빽빽하다. 가뜩이나 좁은 거리는 언제나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빈다. 가족단위로 온 관광객들도 보이고, 가이드 뒤를 일렬로 따르며 목에 명찰을 걸고 있는 단체관광객들도 보인다. 길을 따라 돌며 올라가다보면 마침내 몽생미셸 수도원에 다다르게 된다.
겉에서 본 수도원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직육면체 형태들로 이루어진 벽돌 건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모습을 띄고 있으나 첨탑과 아치도 눈에 띄어 고딕 양식도 가미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형적인 중세 느낌이 나게 한다. 수도원에 들어가려면 표를 끊어야한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관람을 시작할 수 있었다.
관람 루트는 높은 본당에서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내려가면서 돌아 나오는 구조다. 본당은 프랑스에서 보아왔던 대부분의 성당들과 마찬가지로 고딕양식으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제일 안쪽 본전의 경우 불꽃과 같은 플랑부아양(Flamboyant) 양식을 하고 있어, 15세기 경 개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도원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큰 회랑도 많았고, 정원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중간에 등장한 큰 물레방아 같은 기구였는데, 알고 보니 물레방아가 아니라 도르래였고, 죄수들이 그곳에 갇혀 하루도 쉬지 않고 그것을 돌리며 식량이나 물자를 끌어 오는데 착취되었다고 한다. 외부에서 전체적으로 모양이 직사각형으로 답답해보였던 것처럼 내부에서 자세히 보니 벽이 아주 두껍게 만들어져 시공 초기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위로 놓아진 많은 기둥들과 창문들, 그리고 천장의 리브 볼트(Rib vault – 늑골형 궁륭)가 고딕적인 요소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아마 장기간 건축이 되면서 증축과 개축을 반복한 결과일 것이다. 몽생미셸이라는 이름답게 성 미카엘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보였다. 수도원 첨탑 꼭대기에는 아주 작게 성 미카엘 황금상이 있다는 사실은 수도원 내 기념품 상점의 엽서를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천사 날개를 놓고 관람객들이 그 앞에서 천사처럼 사진 찍게 한 포토존도 센스 있었다.
수도원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은 수도원 주변에 세워진 집들과 단풍 든 가을 풍경이 어우러져 운치 있었다. 프로방스의 밝고 화사한 집들도, 알자스의 독일식 목조 주택들도, 파리의 세련된 석조 건물들도 좋았지만 노르망디 특유의 안개 끼고 우중충한 분위기에는 역시 중세 분위기 물씬 나는 이 돌집들이 어울린다.
다시 그 관람객 가득한 거리로 나와 늦은 점심을 먹을 만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몽생미셸의 명물은 오믈렛(Omelette)이라는 말을 하도 들었기에 오믈렛을 제일 저렴하게 하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꽤 저렴한 가격에 코스로 주요리와 더불어 샐러드와 디저트까지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근데 오믈렛이 생각했던 오믈렛이 아니었다. 계란 한 판은 풀어서 만든 듯 큼직한 사이즈, 그리고 그 속 한가득 채운 흰자 거품.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갈 정도. 웬만하면 음식 안 가리고 해당 지역의 음식이라면 꼭 찾아서 먹는 편이나, 이것만큼은 흰자 거품만 계속 먹는 느끼함에 다 먹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감자튀김이 사이드로 따라 나와 배는 채울 수 있었다. 홍합 요리를 시켜 먹은 옆 테이블 손님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싼 레스토랑에서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곳에서 파는 오믈렛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몽생미셸에서는 오믈렛을 먹지 말도록 하자. 대신에 노르망디에는 다른 좋은 요리들이 많다. 크레프(Crêpe)와 갈레트(Galette)는 워낙 유명하고, 홍합 요리도 유명하다. 또 노르망디의 양고기는 갯벌에서 자라 염도 높은 풀을 뜯어먹은 양으로 만든 요리라 애초에 간이 아주 잘 되어있어 맛이 좋다고 전해진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기 전, 성 밖으로 걸어 나와 보는 몽생미셸의 전경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아직 밀물이 들어오기 전이라 바다에 반사된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갯벌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있는 성채의 모습은 충분히 멋있었다. 1300년전 이 곳에 성 미카엘의 계시로 수도원을 세운 주교는 이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다른 건 몰라도 대천사가 프랑스 관광산업에 큰 축복을 내린 것은 분명하다. 렌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점점 희미해지는 몽생미셸의 모습이 지금은 아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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